세계의 역사, 혹은 세계사(世界史)는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온 지구상 모든 인류의 경험과 활동을 기록한 역사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같은 원인(原人)에서부터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현생 인류에 이르기까지 진화 과정 전체를 다루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는 생활 양식에 따라 선사 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와 같이 시기를 구분하며,
지역과 문화에 따라 서양사, 유럽사, 중동의 역사와 같이 구분하기도 하고, 한국사, 일본의 역사, 미국의 역사와 같이 나라별로 구분하기도 한다.
세계사는 이러한 시기와 지역 및 나라별 역사에 대하여 "하나의 전체로서 통일적인 연관성을 지닌 세계의 역사"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출처 : 위키백과 - 세계의 역사
600만년 전 살았던 아프리카 유인원으로부터 두 가지 동물이 진화하였으며, 그 중 하나가 이족보행을 시작하여 인류가 되었다. 200만년 전 뇌의 크기가 상당히 커지면서 호모(Homo), 즉 사람속이 처음 나타났다. 이 시기, 인류가 아닌 다른 동물은 침팬지와 보노보로 갈라졌다.
불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은 호모 에렉투스 (또는 호모 에르가스터)에서 처음, 150만년 ~ 79만년 전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불을 제대로 사용한 것은 전기 구석기에 살았던 호모 하빌리스나 파란트로푸스 같은 “건장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이었을 것이다.
언어의 기원은 좀 더 어려운 문제로, 호모 에렉투스 때부터 있었다는 설과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사용하였다는 설이 있다. 뇌의 크기가 커지면서, 아기들은 골반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전에 분만되어 분만 시기가 앞당겨졌다. 이에 따라 뇌의 신경가소성이 커져 학습 능력이 커졌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시기가 더 길어졌다. 사회적 능력과 언어는 더 복잡해졌고 도구는 더 정교해졌다. 이는 지적 발달에 영향을 끼쳤다. 현대의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20만년 전 혹은 그보다 과거에 아프리카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오래된 화석은 16만년 전의 것이다.
영성(靈性)을 처음 보인 인류는 네안데르탈인(보통 후손 없이 멸종한 종으로 본다)으로, 죽은 자를 묻는 관습이 있었다. 크로마뇽인의 동굴벽화와 같은 더 정교한 믿음은 32000년 전에야 나타났다. 크로마뇽인들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석상도 남겨 종교적인 믿음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11000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 남단 지역에 도달하여 모든 대륙에 남극을 제외한 인류가 살게 되었다. 도구 사용과 의사 소통 능력은 계속 발달하였고, 대인 관계 능력도 더욱 복잡해져갔다.
인류는 역사의 90%를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아왔다. 언어가 복잡해지면서, 기억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이 밈(meme)을 만들어냈다. 문화의 발전 속도가 곧 생물의 진화 속도를 따라잡았으며, 역사가 시작되었다. BC 8500~7000년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 (Fertile Crescent)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농사를 시작하여 농업이 시작되었다. 이는 주변 및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도 확대되거나 별개로 시작되어 대부분의 인간이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다. 농업 생활은 안정적이고 생산성도 이전에 비해 더 컸으므로 인구 수가 증가할 수 있었다.
농업으로 큰 인류는 환경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여분의 음식이 생기면서 점차 상위 계급이 생겼고, 업무 분담도 이뤄졌다. 이는 BC 4000~3000년 경 수메르 지역에 첫 번째 문명의 발달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고대 이집트, 인더스 강 유역, 황하 등에서도 문명이 생겨났다. 글자의 발명은 기록과 지식의 저장을 낳으면서 사회를 더 복잡하게 발달시켰고 정보의 전달도 용이해졌다.
출처 : 지구의 역사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발원하여 세계 각 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람의 진화 기간은 지질시대로 보아 홍적세, 즉 플라이스토세에 해당하며 이 기간 동안 지구에는 4~6 차례의 빙하기와 간빙기가 번갈아 나타났다. 현생 인류는 후기 홍적세로 불리는 약 15만 년 전에 출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순록, 매머드, 야생마, 오록스, 곰 등을 사냥했다. 그러나 언제 어느 때고 사냥한 것은 아니었고, 식물을 채집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여름에는 천막을 쳤고, 겨울에는 오두막을 혹은 붙박이 집을 짓기도 했다. 이들은 기원전 10만 년경에 지구를 점령하면서 그 수가 증가하였으며, 예술과 성사(聖事), 종교 등 일련의 놀라운 발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후기 홍적세의 마지막 빙하기, 뷔름빙기가 끝난 약 1만 년 전경 현생 인류의 인구는 약 1만 명 이하로 추정되고 있다. 그 결과 현생 인류는 매우 협소한 유전자 풀을 지니게 되었다. 1만 년 전 인류의 역사 단계는 신석기 시대로 불린다. 이 즈음의 인류는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청동기시대에 사유재산의 형성과 위계질서, 불평등 등이 생겨났다. 이러한 인류의 문화는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인류 자신의 진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DNA 염기 서열의 변화로 유추한 해부학상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한 과학자들의 가장 지배적인 견해는 ‘아프리카 기원설’이다. 이 가설은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진화하여 5만년에서 1만년사이에, 아시아에서의 호모 에렉투스와 유럽에서의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인구를 대체하면서, 이주했다고 주장한다. 대안적인 가설인 ‘다지역 발생설’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은 지역적으로 나뉘면서 250만 년 전에 이루어진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의 호모 에렉투스의 이주로부터 분리된 인구와 교배하면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구석기 시대의 인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 하빌리스(손쓴 사람) - 호모 에렉투스(곧선 사람: 대표적으로 베이징 원인이 있음) - 호모 사피엔스(지혜가 있는 사람: 대표적으로 -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대표적으로 크로마뇽인이 있음, 현생인류임)로 진화한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인류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진화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 아니라, 한 종에서 다양한 종으로 나뉘고, 서로 경쟁 끝에 남은 종만이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교적 최근에 밝혀진 것이며, 기존의 배턴 넘기기 식으로 진화해 왔다는 설이 뒤집히는 결과를 낳았다.
아프리카인보다 유라시아인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5%정도 가진 사실이 밝혀졌다.
※ 인간의 피부색 분화는 50000년 전에 각 지역의 자외선 양에 따라 일어난 걸로 보고있다. Human skin color ranges in variety from the darkest brown to the lightest hues. An individual's skin pigmentation is the result of genetics, being the product of both of the individual's biological parents' genetic makeup. In evolution, skin pigmentation in human beings evolved by a process of natural selection primarily to regulate the amount of ultraviolet radiation penetrating the skin, controlling its biochemical effects. ★ 인류 확산 '아프리카 기원설'보다 2만년 빨랐다 (2015.10.15) 中서 8만년 전 인류 화석 발견… 요즘 인간과 비슷하게 치아 47개 아프리카 기원설 대척 지점에는 ‘다지역 기원설’이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약 200만년 전 호모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온 것을 계기로 아시아와 유럽 등 여러 지역에서 인류가 독자적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학계에선 이를 ‘촛대형 모델’이라고 지칭하는데, 끝이 여러 갈래로 나뉜 촛대처럼 여러 줄기로 나뉘어 세계 곳곳에서 살던 호모 에렉투스가 유전자 교환 등을 통해 호모사피엔스가 되었고 다시 현생인류로 발전했다는 진화설이다. 이 같은 방계 학설을 뒷받침하는 화석이 발굴됐다.... ★ 현생 인류는 세컨드 임팩트 생존자들의 후손? (2018.3.18) 지구 전 생명체 위협한 ‘토바 화산 폭발’…인류는 견뎠고 살아남았다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32만년 전에 출현해서 여러 곳으로 진출했지만 7만4000년 전에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화산겨울 때문에 대부분 지역에서 전멸했고 피나클포인트 등 아프리카 일부 해안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6만년 전부터 다시 타 지역으로 진출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연구진은 과거 200만년 동안 가장 큰 폭발이었던 토바 화산 폭발로 인한 영향을 분석해 지난 1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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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하시대와 인류의 발생
지구의 자연 조건은 인류의 발생과 생활에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구의 기후가 추워져서 빙하가 형성되었던 시기이며 흔히 빙하시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시기 동안 빙하가 극지방과 높은 산악지대에 형성되고 주변 지역으로는 주빙하기후가 형성되었다. 빙
하시대는 250만년 전에 시작되고 하부 홍적세(250만년∼73만년 전), 중부 홍적세(73만년∼12만 5천년 전) 그리고 상부
홍적세(12만 5천년∼1만 2천년 전)의 시기로 구분되며 이러한 시기들은 심해코어의 산소동위원소 변동에서 얻어진 기후변동 주기
상으로 MIS 단계로 구분된다. 오늘날의 따듯한 시기도 간빙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빙하기 동안 바닷물은 증발하여 극지방과 산악지대에 얼음과 눈으로 남게 되어 해수면이 하강하게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적세(홀로세, Holocene)는 약 1만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 시대를 말한다. 충적세(沖積世) 또는 현세(現世)라고도 부른다. 지질 시대의 마지막 시대 구분이다. 플라이스토세 빙하가 물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로 신생대 제4기의 2번째 시기이다. 마지막 빙기는 제4기 빙하기의 마지막 빙기로 지금으로부터 11만 년 전인 플라이스토세에 시작되어 1만 2천 년 전에 끝났으며, 약 10만 년 정도 지속되었다. 현재의 기후는 이 빙기 이후의 간빙기로 여겨진다. 이 기간 동안 몇 번의 빙하의 확장과 쇠퇴가 있었다. 최고로 빙하가 확장되었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1만 8000년 전이다. (사진은 가장 빙하가 확장되었을 때의 마지막 빙기 모습의 상상도) 빙하기 내의 추운 시기를 빙기(glacial), 비교적 따뜻한 시기를 간빙기(interglacial)라고 부른다. 현재를 빙기와 빙기의 사이인 《간빙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최종빙기 종료후부터 현재까지의 기간을 '후빙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류의 이동 경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은 약 1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갑자기 출현했으며 그때부터 5만 년 전까지 그 전에 이미 정착해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 등 모든 다른 인종들을 대체했다는 ‘이른바 아프리카 기원설’ 또는 ‘단일지역기원설’을 주장한다. 미국의 유전학자들은 이미 지난 1987년 DNA 연구를 통해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 (mtDNA)가 모계를 통해서만 전해진다는 사실로부터 출발, 현 인류의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현대인의 근원지는 아프리카 대륙이었으며 어느 한 여성(미토콘드리아 이브)이 인류의 공통 조상이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증거는 인류의 오랜 화석이 아프리카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는 점이다.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계곡에서 견된, 일명 「루시」라고 불리는 250만년 전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나 탄자니아 올드바이 유적에서 발견된 여러 점의 인류 화석이 그것이다. 2) 다 지역 기원설(multiregional continuity model) 일부 과학자들은 약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온 것을 계기로 유럽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인류가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각 지역의 현대인들은 각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진화해온 결과이기 때문에 현대형 호모사피엔스는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진화하여 유전자 교환이나 유사 진화를 거쳐 오늘의 호모사피엔스에 이르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 최초의 인류 '루시(Lucy)' 미국의 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 박사는 에티오피아 하다르 사막에서 350만년전의 여성 화석을 발견하고 '루시'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루시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가장 유명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남쪽 원숭이)의 화석이다. 루시처럼 아프리카에서 번성하였던 인류는 기후변화라는 큰 폭풍을 만나게 된다. 인류가 등장하였던 신생대 제4기는 이전과 달리 기온이 내려가던 시기였다. 빙하시대가 도래하자 따뜻하고 먹을 것이 많았던 아프리카의 축복도 끝이 나고, 추위와 배고픔의 공포가 엄습해 왔다. 인류는 얼어 죽지 않으려고 옷을 입기 시작하였고 추위를 피해 동굴에서 잠을 잤으며, 불을 능숙하게 다루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은 더 따뜻한 곳으로 이주해야만 하였다. 고대 세계의 인류 이동은 빙하시대라는 잔인한 자연환경과 맞서면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엄마 품처럼 따뜻하고 풍요로웠던 인류의 고향,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들은 각각의 자연환경에 적응해 살면서 다양한 인종으로 분화하였다. -. '최초의 인류' 루시 "나무서 떨어져 사망" 추정 | |||||||||||||||||||||||||||||||||||||||||||||||||||||||||
● 구인류(舊人類)
1. 구인류의 출현
지금부터 약 300만 년 전쯤 아프리카 남부에, 인간에 극히 유사한 원숭이나 원숭이에 유사한 인간,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 (類)가 출현했다. 두개골의 용적(容積)이 고릴라보다 크고 직립으로 걸으며, 상지(上肢)를 사용하여 물건을 쥐고, 도구를 만들었다. ◆ 인류와 동물의 차이 인류는 생물 분류학상으로 영장목(目) 사람과(科)의 포유류다. 인류를 신체구조로 구분할 때 원숭이 등 다른 짐승류와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따라서 동물 분류상으로는 포유류에 편입되고, 그것을 다시 구분할 때 유인원.원숭이 등처럼 영장류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인류는 두 발로 서서 걷고, 인류만의 신체적 특징과 문화를 갖는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 문화란 인류 특유의 생활방법과 그 소산을 말한다. 문화는 그 담당자인 인류가 생후 사회에서 습득할 뿐만 아니라 계승된다. 그러나 동물의 생활은 주로 각 동물이 후천적으로 얻는 습성에 따르며, 유전에 의해 자손에게 전해진다. ◆ 인류의 뿌리와 진화 지금까지 연구 결과로 보면 인류와 유인원(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 등)은 약 500만 년 전부터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 그때부터 인류는 유인원과 사람의 중간 형태인 원인(猿人.선행 인류)을 거쳐 사람에 더 가까운 원인(原人.초기 인류)을 지나 현생 인류로 진화했다. 학명상으로 원인(猿人)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무리에 속한다. 원인(原人)은 흔히 원시인(原始人)으로 부르는 구석기시대 인간으로 호모(homo) 무리에 속한다. 현생인류는 현대인의 직계 조상인 크로마뇽인(호모 무리)을 말한다. 따라서 그동안 발견된 모든 화석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두 부류로 나뉜다. 원인(猿人)은 대략 500만 년 전 지구상에 등장했다. 무릎을 곧게 펼 수 없어 어기적거리며 걷는 유인원과 달리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여러 원인을 통틀어 호미니드(똑바로 서서 걷는 영장류)라고 부른다. 2. 구인류의 종류
a. 유인원(類人猿) : 500만년에서 700만년 전 사이의 영장류 사람상과에 속하는, 꼬리가 없는 종을 말하며, 이는 사람도 포함한다. 2과 8속 21종으로 나눈다. -. 긴팔원숭이과(Hylobatidae): 긴팔원숭이 등 4속 14종. 소형 유인원류. -. 사람과(Hominidae): 고릴라·오랑우탄·침팬지·사람 등 4속 7종. 대형 유인원류.
◆ 인간 - 원숭이 분화 ‘잃어버린고리’ 찾아 [2002.07.12]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 일명 투마이 원인)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발굴에 맞먹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는 화석이 사하라사막 남부에 맞붙어 있는 차드의 사헬 지방에서 발굴됐다는 뜻에서 명명됐다. 연구팀은 함께 발굴된 동물 화석과 비교한 결과, 이는 가장 오래된 인류의 조상인 원인(猿人)의 화석이며 연대는 600만년에서 700만년 전으로 추정했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원인 화석보다 최소한 100만년 이상 앞선다.
하지만 창조과학자들은 이를 '과학적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침팬지 공동조상?… 투마이 화석은 ‘과학적 허구’ 투마이 원인은 논문을 통해 공개된 뒤, 현재까지 가장 큰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2005]
b. 선행인류 : 도널드 조핸슨이 약 300만여년 전에 존재했었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루시)를 발견하면서 인류학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하여 고인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또한 상당히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35년 뒤 루시보다 상태가 더욱 좋은 고인류 화석 아르디를 발표하고, 인류의 기원을 440여만년 전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처럼 인류는 생각보다 더욱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는 있지만, 인류가 원시적인 모습을 벗어난 무렵이 3만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 신생대 신제3기 마이오세부터 제4기 플라이스토세에 살던 유인원과 인류의 중간 형태를 가진 멸종된 화석인류로 500만 년 전에서 50만 년 전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서식하였다. 발원지는 동부 아프리카로 추정되며 남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동부 아프리카 일대에서 생존하였다. 아우스트랄로피테쿠스, 남방고원(南方古猿) 또는 남방사람원숭이 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lis) : 신생대 제3기 홍적세 전기에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에서 살던 화석인류이다. 초기 호모속의 한 종으로 추정되며,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조지 계곡, 케냐의 마공, 루돌프 호수, 미들 아와시, 에티오피아의 오모 계곡, 남아프리카의 슈와르트크란스 등에서 그 화석이 발견되었다. c. 원인류(猿人類) 또는 원인(原人) : 가장 오랜 형의 화석인류로,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갓 진화한 것이다.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 메간트로푸스,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 피테칸트로푸스 로브투스, 시난트로푸스 페키넨시스가 여기에 속한다. 직립으로 보행하고 가장 조잡한 도구, 나무나 원석기(原石器)를 사용하여 채집이나 원시적인 수렵을 하였다.
자바원인 -. 호모 에렉투스 : 1940년대 이후에 자바 원인, 베이징 원인, 아프리칸트로푸스, 메간트로푸스 등의 골격을 비교 분석한 결과 동일종으로 밝혀지면서 하나의 종명으로 통합 여론이 제기되었다.
*. 자바원인 또는 직립원인(直立猿人): 1891~1894에 뒤부아에 의해서 자바의 트리닐에서 발견된 화석인골이다. 학명은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 *. 베이징 원인(北京原人, Beijing Man): 중국 베이징의 북동 용골산의 삼림에서 발견된 화석 인류. 학명은 호모 에렉투스 페키넨시스(Homo erectus pekinesis) -. 피테칸트로푸스 로브투스는 자바섬 중부의 카리 체모로강 지류유역(支流流域)에서 1936년에 발굴된 원인(猿人)이다. 직립원인보다 약간 전의 형에 속한다. -. 호모 헤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는 1907년 하이델베르그시 근교에서 한 고등학교 교사에 의해 처음으로 이 인류의 턱뼈가 발견되었다. 이 인류는 플라이스토세 전기(55만년전)에 살았으며,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공동조상으로 추정되는 인류이다.
◆ 中 윈난성 붉은사슴동굴서 1만4000년전 새 인류화석 발견 [2012.03.16] [동아일보]
고대 인류와 현생 인류의 특징이 섞여 있는 진화의 연결고리인가? 붉은사슴동굴인이라는 제3의 종이 비슷한 시기에 공존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d. 고생인류(古生人類) 또는 원시인류(原始人類) : 원인류에 이어서 나타난 화석인류로서, 스티에期의 문화를 창조했다. 네안데르탈인, 로디지아인(Rhodesia 人), 솔로인(Solo 人) 등이 고생인류에 속하며 제3 간빙기에서 제4 빙하기에 걸쳐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널리 분포되었다. 원인류보다 두개골·사지골(四肢骨)은 많이 진보되어 있었으나 현생인류에 비하면 유치한 네안데르탈인은 크로마뇽인의 조상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학설에 의하면 양자가 모두 같은 종류로서 현생인류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 네안데르탈인 또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는 플라이스토세 중기인 약 20만 년 전에 출현해 약 3만 년 전에 사라진 사람속의 한 종이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가까운 종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분포하였다. 석기(石器)의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불을 이용하였으며, 매장의 풍습을 가지고 있어,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1856년 독일 프로이센의 뒤셀도르프 근교 네안데르(Neander) 계곡에서 인골이 발견되었다. -. 로디지아인(Homo rhodesiensis)은 로디지아의 브로큰 힐에서 1921년, 1925년에 발견된 고생인류이다. 로디지아인에 관해서는 현생인류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설과 네안데르탈인에서 출발했으나 현생인류의 무리로 변화하였다는 설. 니그로 인종의 성격을 갖는 네안데르탈인형(型)이며 니그로 인종의 조상이라는 설 등이 있다. -. 솔로인(Homo erectus soloensis)은 홍적세 후기의 고생인류로 자바 중부의 솔로강 유역 트리닐 근처와 간동이란 곳에서 1931, 1932년에 발굴되었다. 뼈의 구조로 본다면 네안데르탈인과 닮았으나 오히려 직립원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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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인간들이 침팬지들(현재 살아남아있는 오직 하나뿐인 또하나의 사람족(Hominini))과 그들의 공통조상에서 500에서 700만년전 사이에 분리되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영장류 가운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사성을 보이는 종은 보노보와 침팬지로 이들은 대략 6백50만 년 전 경에 각기 다른 속으로 분화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노보와 침팬지, 인간의 DNA 염기 서열은 97%가 일치한다.
생물학적으로도 이들과 인간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며 생활에서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한다. 보노보는 모계 사회를 이루며 침팬지는 부계 사회를 이룬다.
Ape skeletons 두뇌 용량 비교표 1. 고릴라 2. 오스트랄로피테쿠스 3. 호모 에렉투스
인류의 출현 : 약 300만년전 Africa의 초원지대에서 출현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인류의 특징 : 직립보행, 도구사용, 불과 언어 사용, 두뇌 발달
오스트랄로피테쿠스 (Australopithecus : 약 300만년전)
최초의 인류로 추정 의미 : 오스트랄로(남쪽의) + 피테쿠스(원숭이) = 남방 원숭이
300만년전에 지구상에 살았던 인류로 두뇌 용량은 500~700 cc 정도 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최초의 인류로써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호모 하빌리스 (Homo habillis : 약 200만년전) 우리말로 풀어보면 '손쓴사람', '손재주 있는 사람'이라 불리운다. 약 200만년전에 살았던 인류로 간단하게 도구를 제작해 사용했다. 그래서 손에 별로 가공되지 않은 몽둥이를 들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 (Homo erectus : 약 50만년 전) 북경원인, 하이델베르크인, 자바인(인도네시아 자바) 특징 : 동굴 생활을 하면서 불(부싯돌)과 언어 사용
약 170만년 전의 인류이고 두뇌용량은 915-1225cc 정도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경원인', '자바인', '하이델베르크인'이 바로 호모에렉투스이다.
시체 매장 (종교적 감정, 來世觀을 가짐) 이들은 현생 인류와 유사점이 많아서 과거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 이들을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시스로 부르고 우리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라고 불렀다. 즉 이들이 우리의 아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이와 배치된다. 영구동토에서 잘 보존된 이들의 뼈에서 어렵게 추출해낸 미토콘드리아 DNA는 이들이 인간의 아종인가하는 우리의 오랜 물음에 결정적 답을 제공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우리의 조상이 아니다. 맨위에 진화도에서 보듯이 우리의 형제에 해당되는 종인 것이다. 이제 이들을 현생인류와 별도의 종으로 분류해서 호모 네안데르탈시스라고 하고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 현생 인류의 유전자에 얽힌 수수께끼 [2006.05.31] -.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DNA 고고학 [2007.02.05] -. 네안데르탈인의 20%정도의 게놈이 현생인류에서 발견되고 있다 [2014.01.29] 네안데르탈인이 4만년 전 멸종하기 이전에 유럽에서 현생인류와 5000년 동안 공존하며 아이디어와 문화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해부학상의 현대인은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5만∼3만년 전 유럽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만났다. [2014.08.21] -. 영화 '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관계 인간은 지구에 사는 외계인일까? -. ‘인간은 지구에서 오지 않았다: 증거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 를 쓴 저자이자 연구가인 엘리스 실버 박사는 그의 책에서 인간이 지구 출신이 아니라는 총 17가지의 이유를 나열하고 있다. 생리학적으로 인류의 척추 구조는 지구보다 중력이 낮은 곳에 더 적절하다... 화성이 지구보다 중력이 낮다. 인류는 지구에서 가장 진보한 종이지만 놀랍게도 지구의 환경에 맞지 않는다. 태양빛에 의해 손상을 입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음식들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며, 말도 안되게 높은 만성 질병 발생율을 가지고 있다. 지구 태생의 다른 종들은 이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추가적인 223개 유전자는 다른 종들에게서 발견되지 않으며 화석의 부족도 ‘단절고리’ 이다. 이러한 많은 문제들은 우리의 생체 시계가 하루가 25시간인 것으로부터 진화했기 때문이다. 태양계에서 화성만이 자전주기가 25시간. Humans Did NOT Evolve On Earth! | |||||||||||||||||||||||||||||||||||||||||||||||||||||||||
● 현인류
크로마뇽인 현생 인류의 분류학상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다. 고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후손으로 추측되는 이들 호모 사피엔스는 20만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의 화석은 1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의 화석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15만년전에 나타난 현생인류를 포함한 인류들을 의미하는데,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 -. Homo sapiens archaic (most ancient wise man) 2003년 발견 -. Homo sapiens idaltu (elderly wise man — or Herto man) 1997년 발견 -. Homo sapiens fossilis (fossil wise man) discovered 1869 -. Homo sapiens steinheimensis discovered by Berckhemer, 1934. 약 15만년전에 멸종했다고 한다. -. Home sapiens sapiens 여기에 크로마뇽인이 속한다
발렌도르프의 -. 약 3~4만년전에 출현 -. 의미 : Homo(인류) + sapiens spiens(매우 지혜로운 - 사피엔스를 두번 붙여 강조) -. 특징 : 동굴벽화(알타미라 , 라스코), 풍만한 여인의 나체조각(발렌도르프의 비너스) -. 크로마뇽인(프랑스 크로마뇽지방)
약 4만년 전에 현생했던 인류로서 지금의 현생인류와 가장 가까운 인류라고 본다. 벽화등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등 문화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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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는 문자 기록이 있기 전 인류의 역사이다. 문자 기록이 없기 때문에 당시 사용하였던 도구를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한다.
선사 시대는 구석기 시대, 중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같은 석기 시대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던 지역의 청동기 시대 및 초기 철기 시대를 포함한다.
현생 인류는 100,000-50,000 년 전 아프리카 동부에서 발현하여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지구는 제6빙하기 전의 온난기로 아프리카 대륙에는 이미 나일 강이 있었고 현재의 사하라 사막 등 아프리카의 사막은 녹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인류는 마지막 빙하기 무렵 북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에까지 퍼져나가게 되었으며 빙하기가 끝나는 기원전 12,000년 경에는 빙하가 덮지 않은 지구상 모든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 당시의 인류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유랑하였다.
신석기 시대에 들어 농업이 시작되면서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움집과 같은 거주지가 생기고 이들이 모인 촌락이 형성되었다.
신석기인들은 장례와 같이 공동체의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청동기 시대에 들어 인류는 금속을 사용하게 되었고 강력한 권력을 갖춘 지배 집단이 형성되었다.
또한 인류 최초의 도시, 국가, 문자, 도서관, 상업, 종교, 신화, 철학과 같은 지금까지도 인류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분야들이 생겨났다.
● 구석기시대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부터 약 1만년 전에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 구석기시대 동안 고인류들은 채집과 사냥을 하고 살았으며 이동성생활을 하였던 시기이다. 인류사의 거의 99.8%가 구석기시대이다. 그런데, 인류는 약 7백만 년 전에 나타났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석기는 약 250만년 전의 것이다. [네이버] 털 매머드, 털 코뿔소, 동굴사자와 같은 많은 거대 종들이 플라이스토세에 시베리아와 같은 곳에 살고 있었다. 구석기의 날씨는 빙기와 간빙기를 반복하였다 플라이스토세 기의 날씨는 차고, 건조했으며, 현대의 날씨와 같이 계절을 가지고 있었다. 빙상이 남극까지 뻗어있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소수가 모여 군락 생활을 하였으며, 식물이나 과일의 채집, 수렵 등을 통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구석기 시대에도 나무나 골각기 등의 도구가 사용되었지만, 뗀석기를 특징으로 한다. 신석기 시대와의 차이점은 토기를 사용하지 않고, 간석기(마제석기)가 아닌 뗀석기(타제석기)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또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중간 단계인 중석기 시대에는 세석기를 사용하였다. 신석기 시대에는 창, 활, 예리한 칼 등을 무기로 사용했다. 구석기 시대의 인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남방의 원숭이) - 호모 하빌리스(손쓴 사람) - 호모 에렉투스(곧선사람: 대표적으로 베이징 원인이 있음) - 호모 사피엔스(슬기 사람: 대표적으로 -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슬기슬기 사람: 크로마뇽인이 대표적이며 현생인류임)로 진화한다. 뗀석기 - 주먹도끼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도구는 뗀석기로, 짐승의 가죽을 벗기거나, 사냥을 하거나, 공구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쓰였으며 그 용도에 따라 밀개, 찍개, 주먹도끼, 뚜르개, 새기개, 긁개 등으로 나뉜다. 석기를 제작하는 방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좀 더 발전하게 되는데 모루떼기 - 직접떼기 - 간접떼기 - 눌러떼기 순으로 발전한다. [위키백과] 유명한 동굴 벽화인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나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 역시 구석기 시대의 것이다. 한편, 레스퓌그의 비너스와 같이 가슴, 엉덩이, 생식기 등이 과장된 여성상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다산숭배를 보여준다. [참고 : 후기 구석기 예술] 한반도에서는 약 7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의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구석기인 유골로는 평양에서 발견된 역포인, 1983년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발견된 흥수 아이 등이 있다 [위키백과_세계역사] 구석기시대문화 전기
구석기인들은 몸돌(원석)을 타격해 필요없는 부분(격지)을 떼어내고 원하는 모양으로 만든 몸돌석기를 사용하였다. 인류 최초의 도구로서 원석기(原石器)의 존재가 문제가 되었으나, 이것이 과연 인공적인 석기인지 또는 자연의 타열(打裂)에 의한 것인지는 미확인 상태로 남아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확실하게 인공물이라고 인정되는 가장 오래된 유물은 아프리카의 카푸문화·올두바이문화의 석기이다. 이 시기의 가장 오래된 공구는 175만 년 전의 것으로, 남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계곡에서 발견되었다. 주먹만한 자갈에서 작은 격지를 한 편 또는 서너 편 떼어낸 석기인데, 이러한 석기를 냇돌석기라고 부른다. 이 석기는 남방원인(南方原人)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아브빌문화는 카푸문화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귄츠·민델 빙기(氷期)에 해당된다고 추정한다. 그 시기에는 난계(暖系)의 동물군을 수반하며 간단한 격지석기도 사용하였다. 또한 아브빌문화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하여 특히 발달하였으며, 북아프리카·사하라·콩고·동아프리카 등에 있었고, 남아프리카에서는 스텔렌보스문화의 최고기(最古期)가 이에 속한다.
이 문화는 아프리카에는 없고, 유럽 또는 유라시아에 존재한 계통의 문화로서, 가장 오래된 예로서는 영국의 템스강 하구 부근의 유적을 대표하는 클랙턴문화가 있다. 양면석기는 적고 격지는 살이 두꺼웠으며, 형태도 일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핵석(核石)에서 깨낸 박리각(剝離角)은 90°를 넘었다. 수정과 가공이 간단하였으며, 중부 프랑스 타야크문화는 이와 유사한 문화이다. 다음의 르발루아문화는 파리 근교의 르발루아 페레 유적을 표식유적(標式遺蹟)으로 하고 있다. 클랙턴문화에서는 몸돌로부터 격지를
떼어낼 때 소용되는 만큼의 격지를 떼어내기 알맞도록 몸돌에 조정을 가하는 일이 없었지만, 르발루아문화에서는 미리 타격면에 조정을
가하여 떼어냈다. 따라서 박리각은 90°전후가 되었고, 박면은 편평하고 배면(背面)에는 갈라진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삼각형의
첨두형(尖頭形)·광폭형(廣幅形)·세장형(細長形) 등 여러 형태의 박격지를 제작하였다. 아시아에서는 특수한 석기상(石器相)이 있었는데, 거친 냇돌석기가 대표적인 것이다. 이 문화에 속하는 것은 중국의 저우커우뎬[周口店]문화, 미얀마의 아니아티안문화, 자바의 파지타니안문화, 말레이시아의 탐파니안문화와 인도의 소안문화 등이 있다. 구석기시대문화 중기 중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 문화는 프랑스의 도르도뉴강(江)의 무스티에 동굴 유적에
나타나 있는 무스티에문화이다. 최후 간빙기에서 뷔름 빙하기 초기에 걸치는
시기로서 온대계와 한대계 2종의 동물군을 수반한다. 이 2계통의 문화가 격지
계통의 문화에 의해서 통일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 간빙기 때와 뷔름 빙하기의 초기 중간, 즉 약 5만 년 동안 유럽 구석기시대
중기의 석기는 무스티에문화 집단과 연결되어 있다. 이때에는 르발루아 석기
제작기술과 클랙턴·아문화 전통을 가진 여러 가지 석기상이 공존하였다. 예를
들면, 독일의 알트뮈리안문화, 이탈리아의 퐁티니안문화, 알프스 지역의
빌트키르힐린문화, 근동의 자브로드안문화 등이다. 인도의 소안 후기문화와 중국
딩춘[丁村]문화는 유럽의 무스티에문화와 같은 시기에 속한다. 아프리카 북쪽에서 르발루아-무스티에 석기가 발견되고, 이 대륙 남쪽에서 특수한
석기가 알려졌는데, 그것은 로디지아와 케냐의 스틸바이안 전기에 속하는
포레스미스안문화와 상고엔문화 등이다. 구석기시대 중기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네안데르탈인이 제작한 모든 석기가 비교적 유사하다는 것이다. 구석기시대문화 후기 슴베찌르개 : 구석기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찌르개로 돌날을 만들때 생긴 날카로운 조각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잔손질을 해서 만든 슴베를 자루와 결합하여 창으로 사용했다. 최후의 뷔름 빙하기는 3단계의 소빙기(小氷期)와 그 사이의 소간빙기로 구분되는데,
제1 소간빙기에서 플라이오세의 종말까지 격지석기 문화계에서 나온 가늘고 긴
돌날[石刃]석기를 특색으로 하는 여러 문화가 발생하였다. 그것은 전대와는 다른
호모 사피엔스가 활약한 최성기의 수렵 ·채집 문화였다. 즉, 활 ·투창 ·투석
·함정 등으로 매머드 ·들소 ·동굴곰 ·야생마 ·순록 ·코뿔소 등을
수렵하였으며, 또한 어로도 시작하였다. 그에 따른 주술적 요소가 증가하여 제사
·매장 ·신체장식 등도 행하게 되어 생활 내용이 복잡해졌다. 이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만 5000년 전에 시작된 구석기시대 후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뷔름의 온대성기후가 시작되는 BC 2만 5000년경 말에 오늘날과 같은
기후조건이 형성되었는데, 이러한 기후의 변화는 구석기시대 중기 말에 새로운
유형의 석기 출현과 구석기시대 후기의 석기 중 무스티에문화인 긁개의 계속적인
출현에 의해서 확인되었다. 이 마지막 시기에는 뼈연장이 출현하였는데, 거의 없다가
갑자기 출현한 것으로 석기제작 방법에 있어서도 여러 유형의 석기를 제작하기
위하여 긴 격지를 계통적으로 떼어 내는 방법을 강구하였다. 구석기시대 후기의 사람은 전기와 중기의 사람보다 지혜가 발달되어 간접 타격법으로
긴 격지를 떼어 내어 석기를 만들었다. 간접 타격법은 석재 위에 매개물을 놓고, 그
매개물에 타격을 가하여 격지 특히 긴 격지를 얻는 방법이다. 이때 남겨진 몸돌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긴 격지석기는 밀개 ·조각기 ·칼 ·송곳 등이었다. 긴
격지는 그 길이가 그 자체 넓이의 2배를 초과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러한 석기의 제작자는 현생인류(現生人類)로 그들의 활동 자체가 종족의 특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준이 되었다. 그들이 생활한 가장 오래된 유적 내에서 그들의
집자리, 염료사용 흔적, 장신구 등이 발견되어, 예술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프랑스에는 이 시기 초에 샤텔페롱문화가 있었으며, 중부 유럽의 스젤레티안문화,
이탈리아의 베르나르디니안문화, 러시아의 코스티엔키문화, 근동과 중동의
에미리안문화와 바라도시티안문화가 있었다. BC 3만 년경 오리냐크문화가 유럽과
근동에서 전(前)문화와 교체되었는데, 근동의 그러한 문화를 때로는
앙테리안문화라고 부른다. 몇몇 지역에서 오리냐크 문화전통이 지속되었고,
그라베트문화는 BC 2만 5000년경 서유럽에서 돈 계곡까지 전파되었다. 이 무렵 오스트리아에서 러시아까지 특수한 문화가 발생하였는데, 이것을
파부로비안문화라고 한다. 솔뤼트레문화는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발생한 특수한
문화인데, BC 1만 8000~1만 5000년에 이 지역에 정착되었다. 곧 이어서 마들렌문화
전기 또는 바드굴리안문화 그리고 지중해 북서쪽의 지역문화로서 살페트리안문화가
출현하였다. 마들렌문화의 발전은 BC 9000년경 유럽 북방의 온대기후 시기까지
지속되었다. 독일 북쪽의 함부르지안문화와 영국 그레스월리안문화는 이탈리아와 프로방스의
로마넬리안문화와 같이 마들렌문화 말기에 속한다. 근동의 오리냐크문화를 계승한
아틀리티안문화는 이 지역에서 발생한 중석기문화와 더불어 변형된 것이 확실하였다.
아프리카 북쪽의 르발루아-무스티에문화는 지역에 따라 구석기시대 후기에도
지속되었다. 그것이 앙테리안문화이다. 카푸문화와 이베로-모루지안문화는 그 편년이 1만년 이상으로 올라간다. 콩고의
도코시안문화, 케냐의 카푸문화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하여 동일연대로
측정되었다. 스틸바이안문화, 상고엔과 포레스미안문화는 남아프리카 구석기시대
후기 전기간을 통하여 지속되었다. 이 시기의 아시아 석기에 관해서는 아직 충분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다만 자바의 나간동문화, 중국의 오르도스문화, 시베리아의
안가라와 아퐁토바-고라문화를 열거할 수 있을 뿐이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해서 여러 가지 연대를 얻었지만 앞으로 더 확인하여야 될 것 같다. 한편, 아메리카 북쪽에 최초의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유럽 구석기시대 후기 초와 같은 시기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아메리카 내 가장 오래된 독립문화는 산디아문화라고 하는 것으로서 약 1만 2000년 전에 해당된다. 그러나 BC 1만 년부터 근동에서는 중석기가 출현하고, 최초로 식량을 생산한 사실이 밝혀졌다. 기타 지역에서는 계속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전(全) 구석기시대 동안을 수렵 ·어로 ·채집으로 생활하였다. 이러한 문화는 후빙기에도 연장되어 최말기구석기문화라 일컫는다. 한국의 구석기시대문화 한국의 구석기 유적 한국에서는 1964년 이후 충남 공주군 석장리(石壯里) 금강 북안에서 구석기시대 문화포함층이 연세대학
학술조사단에 의해서 발굴되기 시작하였는데, 지층(地層)이 27개의 층위로 형성되어 있고,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문화층도 11개나
되었다. 제1층의 문화층은 구석기시대 전기, 즉 민델 빙하기, 제2∼6층의 문화층은 구석기시대 중기에서 후기에 걸친 시기, 즉
리스 빙하기에서 제3간빙기까지의 시기, 그 위층의 문화층은 구석기시대 후기 및 중석기시대로 추정되었다. 출토된 석기에
는 제1∼4층에서 외날도끼 ·쌍날도끼 등이 있었고, 제5∼6층에서 밀개 ·주먹도끼 등이 있었으며, 제7∼10층에서 밀개 ·새기개
등이 있었다. 그리고 제11층에서 새기개 ·밀개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유럽의 구석기시대 후기문화의 하나인 오리냐크문화와 닮은 점을 보여 주는 것들이다. 73년에는 제주 빌레못동굴에서 큰곰 ·붉은사슴 ·노루 등의 화석골(化石骨)과 함께 인공박편(人工剝片) ·골제(骨製) 밀개 ·목탄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구석기시
대 중기에서 뷔름 빙하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해 연세대학 조사단이 충북 제천시에서 점말동굴을 발굴하였는데, 그곳의
퇴적층에서 골기 ·석기 등과 함께 동굴곰 ·호랑이, 꽃사슴의 변종, 사향노루 등 홍적세 때의 동물 화석골이 다량 발견되어
구석기시대 문화의 편년과 당시 자연환경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 일본에서 일본인이 발간하는 고고학 잡지를 통하여 북한의 함북 웅기 굴포리(屈浦里)에서 구석기시대 후기의 문화층이 단구(段丘) 단면에서 발견되어 밀개 ·새기개 ·외날찍개 등 격지석기들
이 채집된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두만강 하류 일대에서 매머드의 어금니 ·다리뼈 화석이 발견된 사실, 평남 중화군 상원면(祥原面)
동굴에서 동굴곰 ·큰곰 ·말 ·코끼리 ·코뿔소 ·물소 ·원숭이 등 대소 동물의 뼈가 발견된 사실(이로 인하여 이 동굴이 중국의
저우커우뎬에서 발견된 베이징 원인과 같은 구석기시대 전기의 인류가 살았던 동굴임을 알게 됨), 평남 평양 대현동 동굴에서
직립원인(直立原人)과 네안데르탈인의 중간형인 소녀의 두개골이 발견된 사실과, 기타 여러 가지를 발견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여러 사실에서 한국에서는 구석기시대 전기에서 후기에 걸쳐 구석기인이 스스로 만들어낸 석기문화를 이용하면서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주로 동굴 속에 살면서 석제무기로 수렵을 하다가, 기후가 온난해짐에 따라 해변 ·강변으로 나가 어로생활도 하게 되었고, 점차 정착 농경생활로 넘어간 것이라 생각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크로마뇽인들은 동굴의 벽에 그림을 그렸다. 시기는 마지막 빙기 때였다. 동굴 벽화(cave paintings)는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프랑스 남서부와 스페인 북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다. 동굴 벽화는 초자연에 관한 인간의 사고와 감정 그리고 믿음을 나타내는 구체적이고도 대규모인 최초의 상징들이다. 서부 유럽에서 150개 이상의 동굴에서 동굴벽화들이 발견되고 있다. 뗀석기의 제작과정 ◆ 뗀석기는 먼저 원석을 일차적으로 다음어 거북등 모양의 석핵을 만든 후 석핵의 모퉁이를 가격하여 석편을 떼어내
사용하는 방식으로 매우 경제적인 방법이었다. 이러한 방식의 구석기 유물은 프랑스의 르발루아 근교에서 처음 발견되어 흔히 르발루아
방식의 석기로도 불린다. 구석기 후기에는 석기 제작과정이 보다 정교하게 발전하여 정과 모루를 이용한 돌날 방식의 석기를 제작하였다. 한편, 중국에서 발견된 약 28,940년 전 구석기 후기 시대 유물로 흑연으로 만들어진 구멍뚫린 돌구슬과 같이 구석기 후게에는 여러 가지 장신구 유적이 발견되고 있어 이 시기에 인류가 이미 정교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키백과_세계역사] 흥수 아이 1983년 충청북도 청원군 두루봉 동굴 유적(흥수굴)에서 발견된 화석현생인류에 붙인 이름이다. 흥수굴은 발견자인 김흥수의 이름을 따서 굴에 붙인 이름이고, 동굴에서 발견된 소년은 흥수아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 두루봉동굴과 흥수아이를 통해 본 구석기시대의 장례문화 |